"행동으로 논리를 대변하고, 결과로써 과정을 입증한다" — 창설 40여 년이 넘도록 언론 인터뷰 한 번 하지 않던 이 부대는, 2024년 12월 어느 밤 헬기를 타고 국회로 향하며 원치 않는 방식으로 전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2·12 사태와 서울올림픽이 만든 부대
707특수임무단의 뿌리는 1981년 4월 17일 창설된 '707특수임무대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직할로 만들어진 중령급 부대였습니다.
창설 배경에는 두 가지 흐름이 겹쳐 있습니다. 하나는 1979년 12·12 사태 이후 특전사령관의 신변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내부적 필요였고, 다른 하나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차원의 대테러활동지침을 실행할 전담 조직이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부대의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두 국제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이름조차 낯선, 조용히 움직이는 부대였습니다.
대대에서 '단'으로, 38년 만의 격상
1981년부터 2018년까지 707부대는 중령이 지휘하는 대대급 조직으로 운영됐습니다. 그러다 2018년 10월, 부대를 확대 개편하기로 결정이 내려집니다.
2019년 2월 1일, 707특수임무대대는 대령이 단장을 맡는 '특수임무단'으로 공식 격상됩니다. 인원과 장비가 늘어난 것은 물론, 지휘 체계도 한 단계 위로 올라간 셈입니다.
평시 임무는 예나 지금이나 대테러 작전입니다. 1980년대에는 국내에서 벌어진 무장 인질 사건에 직접 투입됐고, 1990년대 이후로는 해외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는 국민이 테러 위협에 놓였을 때 대응하는 쪽으로 역할이 넓어졌습니다. 전시에는 'X파일'이라 불리는 비밀 작전을 수행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백호용사가 되는 길
707부대원의 별칭은 '백호용사', 부대의 상징은 백호(白虎)입니다. 검은 베레를 쓴다는 점도 특전사 예하 다른 부대와 구분되는 특징입니다.
이 부대는 민간인을 바로 뽑지 않습니다. 이미 특전 병과 부사관 이상으로 복무 중인 직업군인들 가운데서 다시 선발하는 구조입니다. 즉 공수 자격은 기본이고, 여기에 더해 재선발 과정을 한 번 더 통과해야 하는 셈입니다.
알려진 바로는 지원자를 대상으로 한 열흘가량의 평가 과정에서 절반을 훌쩍 넘는 인원이 걸러진다고 합니다. 선발된 뒤에도 잠수 자격을 갖춰야 하고, 혹한기에는 눈밭에서 맨몸 체력단련을 이어가는 등 훈련 강도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검은 베레가 쓰는 무기들
기본 화기로는 K1A 기관단총과 K7, 독일제 MP5A5, 벨기에제 FN SCAR-L 소총 등을 함께 운용합니다. 임무 성격에 따라 국산 화기와 해외 화기를 섞어 쓰는 점이 특징입니다.
저격 임무에는 MSG-90, AWSM, K14, M110 등 여러 계열의 저격소총이 쓰이고, 권총류로는 K5와 HK45, 시그자우어 P226, 글록 17·34 계열이 함께 사용됩니다. 근접전용으로 B&T MP9 기관단총이나 Kel-Tec KSG 산탄총 같은 특수 장비도 갖추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훈련 파트너도 화려합니다. 미국 델타포스, 영국 SAS, 프랑스 특수부대는 물론 호주 SASR, 캐나다 JTF2 등과도 연합훈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1982년 2월, 부대를 뒤흔든 하늘의 사고
707부대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하루는 전투가 아니라 사고로 기록돼 있습니다. 1982년 2월 5일, 제주 상공에서 공군 C-123K 수송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비행기에는 707특수임무대대 소속 대원 47명과 공군 승무원 6명, 모두 53명이 타고 있었는데 전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폭설이 몰아치는 악천후 속에서도 무리하게 운항을 강행한 것과 기체 노후화에 따른 정비 부실이 겹친 결과였습니다.
창설 1년 만에 부대원 절반에 가까운 인원을 한꺼번에 잃은 셈이니, 지금도 707부대 역사에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추풍령 인질극부터 아크부대까지
707부대가 실전에서 존재감을 처음 드러낸 사건은 1986년 12월 3일 추풍령 휴게소에서 벌어진 무장 탈영병 인질극이었습니다. 이 사건에 투입돼 인질을 무사히 구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국내 최초의 전문 대테러부대라는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2011년부터는 아랍에미리트(UAE)에 파견된 '아크부대(군사훈련협력단)'를 통해 현지 특수전 부대의 교육훈련을 지원하는 임무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파병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707부대의 대표적인 해외 활동 가운데 하나입니다.
2024년 12월, 국회로 향한 헬기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곽종근 당시 특수전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707특수임무단 병력이 헬기를 타고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유리창을 깨고 본청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보좌진, 시민들과 물리적으로 부딪히는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이때 부대가 실탄과 공포탄을 합쳐 약 6000발가량을 반출했다는 사실이 이후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드러나면서 큰 논란이 됐습니다. 실제 교전을 염두에 둔 것이었는지를 두고는 지금도 진술과 해석이 엇갈립니다. 현장에 있었던 707부대원 중 한 명은 언론 인터뷰에서 "황당한 일로 국회에 출동하게 돼 마음이 아팠다"는 취지로 심경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내란 관련 재판으로 이어졌습니다. 2026년 7월 24일 결심공판에서 특별검사팀은 곽종근 전 사령관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고, 곽 전 사령관 본인은 혐의 상당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재판부에 부하들에 대한 선처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최종 선고는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으로 아직 진행 중입니다.
45년 넘게 조용히 임무만 수행해 온 부대가, 이제는 실력만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로도 함께 거론되는 상황이 된 셈입니다. 707특수임무단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국민들 앞에 다시 서게 될지는, 이 재판의 결과와 함께 지켜볼 일입니다.
| 항목 | 707특수임무단 | 델타포스(1st SFOD-D) |
|---|---|---|
| 창설 | 1981년 4월(2019년 '단' 격상) | 1977년 11월 |
| 소속 | 육군특수전사령부 직할 | 미 육군 /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 |
| 지원 자격 | 특전 부사관 이상 중 재선발 | 특수전 경력자 중 지원, 자체 선발과정 통과 |
| 대표 임무 | 대테러·요인 안전, 전시 특수작전 | 인질구출, 요인 생포(사담 후세인 생포작전 등) |
| 상징 | 백호부대, 검은 베레 | 부대 존재 자체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음 |
같은 '국가 최정예 대테러부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도, 707부대는 창설 배경 자체가 국내 정치 상황과 맞닿아 있었다는 점에서 델타포스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온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