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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KA-BAR) 나이프란, 곰을 잡았다는 편지 한 통이 이름이 된 이유

8월 29, 2026
미 해병대 카바(KA-BAR) 전투용 나이프

사진: James Case, CC BY 2.0 · 위키미디어 커먼즈

1942년 태평양 전선에 투입된 미 해병대 레이더 부대는 영국 특수부대의 상징이던 페어베언-사익스 단검을 본떠 만든 전용 격투용 나이프를 지급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칼은 실전에 나가자마자 떨어뜨리기만 해도 칼끝이 부러지는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냈고, 손잡이마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금이 가는 물건이었습니다. 결국 해병대는 이 화려한 특수전용 단검 대신, 평범한 다용도 작업칼 하나를 새 표준으로 채택했는데, 이 칼이 바로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용 나이프로 꼽히는 카바(KA-BAR)입니다. 그런데 이 전설적인 이름이 정작 해병대와는 아무 상관 없이, 곰 한 마리와 편지 한 통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 칼이 어떻게 태어나 이름을 얻고, 해병대를 넘어 특수부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특수부대용 칼이 자꾸 부러진 이유

해병대 레이더 부대에 지급됐던 '레이더 스틸레토'는 클리퍼드 슈이 중령이 영국 특공대의 페어베언-사익스 전투용 단검을 참고해 설계한 칼이었습니다. 문제는 전쟁 중 전략 금속을 아끼기 위해 칼날을 정밀 단조가 아닌 얇은 강판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만들고, 손잡이 뭉치도 아연·알루미늄 합금을 부어 만든 다이캐스팅으로 대체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합금은 시간이 지나면 아연 성분이 빠져나가면서 손잡이 자체가 푸석푸석해졌고, 현재 남아 있는 실물의 절반 이상에서 균열이나 파손 흔적이 발견될 정도입니다. 오스카 피트로스 준장은 훗날 이 칼을 두고 "그냥 떨어뜨리기만 해도 부러질 정도로 잘 깨지는 칼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게다가 칼날이 지나치게 얇아 밧줄을 자르거나 통조림을 따는 등 정글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작업에는 아예 쓸 수 없었습니다.

경쟁 끝에 채택된 다용도 나이프

존 데이비스 대령과 하워드 아메리카 소령을 중심으로 한 해병대는 전투와 작업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실용적인 칼을 새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제조사가 설계안을 냈고, 그중 유니온 커틀러리 사가 제출한 '1219C2' 도안이 최종 채택됐습니다. 미국식 보위나이프에서 따온 클립포인트 형태의 칼날에 무게를 줄이기 위한 홈(풀러)을 새기고, 가죽 와셔를 겹겹이 쌓아 만든 손잡이와 강철 코등이를 더한 구조였습니다. 재질은 경도 56~58HRC의 1095 고탄소강을 썼고, 칼날 길이 약 17.8cm(7인치), 전체 길이 약 30.2cm, 무게는 약 320g이었습니다. 해병대 병참감실은 처음에 이 도입안을 거절했지만 사령관이 직접 나서 결정을 뒤집었고, 1942년 11월 23일 '미 해병대 유틸리티 나이프 마크2'로 공식 채택됐습니다. 첫 생산분은 이듬해 1월 캠릴러스 커틀러리 사를 통해 출고됐습니다.

총알이 아니라 편지 한 통에서 시작된 이름

'카바'라는 이름은 사실 이 칼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인 1923년에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유니온 커틀러리는 자사 칼을 산 어느 모피 사냥꾼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는데, 사냥 중 총이 걸려 작동하지 않자 회사의 칼로 곰을 잡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편지 글씨가 워낙 알아보기 힘들어 알아볼 수 있는 글자는 "k a bar" 정도뿐이었고, 회사 관계자들은 이를 "kill a bear(곰을 죽이다)"의 줄임말로 해석해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이후 회사는 이 문구를 상표로 등록해 자사 칼마다 새겨 넣기 시작했습니다. 1944년 무렵 해병대원들은 어느 제조사가 만들었든 상관없이 칼날에 찍힌 이 각인 때문에 마크2를 그냥 '카바'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별명이 워낙 굳어진 나머지 1952년에는 유니온 커틀러리 스스로 회사 이름을 아예 '카바 커틀러리'로 바꿔버렸습니다.

태평양의 정글에서 증명된 실전 성능

부러지기 쉬웠던 레이더 스틸레토와 달리, 카바는 백병전은 물론 참호를 파거나 덩굴을 치고 전투식량 깡통을 따는 등 정글에서 필요한 모든 작업을 한 자루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선의 섬 하나하나를 거치며 해병대원들 사이에서 신뢰가 쌓였고,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까지 이어지며 사실상 해병대를 상징하는 장비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작 이 칼을 아낀 건 해병대만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네이비씰의 전신인 수중폭파팀(UDT) 대원들도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베트남전 시기까지 카바를 개인 장비로 애용하며 물속과 해안 양쪽에서 두루 사용했습니다.

공식 후계자가 등장한 뒤에도 이어진 인기

영원할 것 같던 카바의 독점적 지위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1970년대 일부 부대를 거쳐 1982년, 미 해군은 온타리오 나이프 컴퍼니가 만든 신형 '마크3 네이비 나이프'를 네이비씰의 공식 표준 지급 나이프로 채택했습니다. 스테인리스강 칼날에 손잡이 끝을 망치처럼 쓸 수 있고 등날의 톱니로 자르거나 지렛대로 쓸 수 있게 설계된, 잠수 작전에 특화된 칼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식 지급품이 바뀌었다고 카바가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적지 않은 대원들이 여전히 개인 비용으로 카바를 구입해 따로 휴대했고, 해병대에서는 지금까지도 승인된 개인 장비 목록에 카바가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태어난 지 80년이 넘은 군용 칼이 아직도 현역으로 쓰이는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카바 마크2 vs 온타리오 마크3, 핵심 비교

지금까지 살펴본 두 나이프의 차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분 카바(KA-BAR) 마크2 온타리오 마크3 네이비 나이프
공식 채택 1942년, 미 해병대 1982년, 미 해군·네이비씰
칼날 길이 약 17.8cm(7인치) 약 16.5cm(6.5인치)
재질 1095 고탄소강 440A 스테인리스강
손잡이 가죽 와셔 적층 강화 폴리머
전체 길이 / 무게 약 30.2cm / 약 320g 약 27.3cm / 약 280g
특징 클립포인트+풀러, 다용도 백병전용 톱니 등날+해머 폼멜, 잠수 작전용
주 사용자 해병대 전반, 초기 UDT 네이비씰 공식 지급(1982~)

부러지기 쉬웠던 화려한 특수전용 단검 대신 선택된 평범한 다용도 나이프가, 곰을 잡았다는 편지 한 장 덕분에 지금의 이름을 얻고 80년 넘게 살아남아 여전히 특수부대원들이 개인적으로 챙기는 전설의 칼이 됐다는 흐름이 흥미롭습니다. '특수부대가 운용하는 무기' 연재는 앞으로도 소총과 권총, 차량과 기타 장비를 하나씩 짚어가며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