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임페리얼 전쟁박물관(IWM) 소장 · Public Domain(Crown Copyright 만료)
1980년 5월 5일 저녁, 런던 켄싱턴의 이란대사관 앞에서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이 TV 생중계로 초유의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검은 전투복과 방독면을 쓴 대원들이 건물 창문으로 로프를 타고 내려가더니, 단 17분 만에 엿새를 끌어온 인질극을 끝내버린 것입니다. 그날 시청자들이 처음으로 얼굴(정확히는 방독면)을 마주한 부대가 바로 영국 육군 특수부대 SAS(Special Air Service)입니다. '특수부대가 운용하는 장비' 연재는 오늘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갑니다.
사막에서 시작된, 실패로 끝난 첫 작전
SAS는 1941년 7월 이집트에서 데이비드 스털링 대위가 창설했습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이탈리아군의 비행장과 항구 시설을 야간에 기습하기 위해 만든 소규모 습격부대였습니다. 그런데 그해 11월 토브룩 인근에서 벌인 첫 낙하산 작전은 참혹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거센 사막 폭풍 속에 투입된 낙하산병 50명 가운데 무사히 복귀한 인원은 21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습니다. 이후 SAS는 낙하 침투 대신 장거리사막정찰대(LRDG)의 차량으로 적진 깊숙이 이동한 뒤 지프로 직접 습격하는 방식으로 전술을 바꿨습니다. 이 방식이 통하기 시작하면서 SAS는 종전까지 축차 300대 넘는 추축군 항공기를 파괴했고, 창설 멤버 패디 메인 한 사람의 격추 기록이 왕립공군 어느 에이스 조종사보다 많았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집니다. 1945년 한 차례 해체됐던 부대는 이후 재편을 거쳐 오늘날 육군 22 SAS연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판 댄스'라 불리는 22km 지옥
SAS에 들어가는 길은 지금도 악명이 높습니다. 지원자는 웨일스 브레콘 비콘스 산악지대에서 4주간 이어지는 체력·적성 평가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 핵심이 '인듀어런스(Endurance)'라 불리는 최종 행군입니다. 완전군장을 메고 64km(40마일)를 걸으며 펜이판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하고 제한 시간은 20시간에 불과합니다.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이 훈련을 '판 댄스(Fan Dance)'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이 관문을 넘어도 끝이 아니어서, 벨리즈나 브루나이·말레이시아 정글에서 생존훈련을 받고 포로가 됐을 때를 가정한 심문 저항·탈출 훈련까지 거쳐야 정식 대원이 됩니다. 매 기수 200명 안팎이 지원해 최종적으로 뱃지를 받는 인원은 열에 한 명꼴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A·B·D·G, 네 개 중대로 나뉜 이유
정규군인 22 SAS연대는 A·B·D·G 네 개의 '세이버 중대(sabre squadron)'로 구성됩니다. 중대별로 소령이 지휘하는 약 65명 규모이며, 각 중대는 다시 네 개 소대로 나뉘어 저마다 다른 특기를 갖습니다. 낙하산으로 고고도에서 뛰어내리는 공수(Air) 소대, 잠수와 소형보트 침투를 맡는 보트(Boat) 소대, 차량을 이용한 사막·장거리 기동을 전문으로 하는 기동(Mobility) 소대, 산악과 혹한 지역 작전을 담당하는 산악(Mountain) 소대입니다. 부대 본부는 잉글랜드·웨일스 접경에 가까운 헤리퍼드셔의 '스털링 라인스'에 있는데, 이름 자체가 창설자 데이비드 스털링에서 따온 것입니다. 부대 모표는 아래를 향한 엑스칼리버 검을 불꽃이 감싼 모양으로, 흔히 '날개 달린 단검'으로 잘못 불리곤 합니다. 그 아래 적힌 문구가 그 유명한 'Who Dares Wins(누가 감히 승리하랴)'입니다.
뮌헨의 비극이 만든 무기, 섬광탄
SAS를 대테러부대로 각인시킨 무기 중 하나가 섬광탄입니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에 이스라엘 선수단이 인질로 잡혀 11명이 희생되자, 각국은 인질을 다치지 않고 제압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SAS는 대테러전 전담 조직인 CRW윙을 꾸리고 영국 국방과학연구소 폴튼 다운과 함께, 마그네슘과 과염소산칼륨을 섞은 화약을 터뜨려 순간적으로 30만 칸델라의 섬광과 160~180데시벨의 굉음을 내는 장치를 개발했습니다. 사람을 다치게 할 파편 없이 몇 초간 시야와 청각만 마비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헤리퍼드 기지의 '킬링 하우스'에서 이 장비를 활용한 근접전투 훈련이 반복됐고, 1977년 루프트한자 181편 납치 사건 때는 SAS 대원 두 명이 독일 GSG9에 섬광탄을 빌려주고 현장에서 함께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 5월 5일, 프린시스 게이트의 17분
섬광탄이 세상에 존재를 알린 순간은 1980년 런던이었습니다. 그해 4월 30일, 이란 남부 아랍인 자치를 주장하는 무장단체 6명이 켄싱턴의 이란대사관을 점거하고 26명을 인질로 붙잡았습니다. 협상이 이어지는 동안 5명은 풀려났지만, 5월 5일 테러범들이 문화담당관 아바스 라바사니를 살해해 시신을 대사관 밖으로 던지자 영국 정부는 마거릿 대처 총리의 승인 아래 SAS 투입을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오퍼레이션 님로드'입니다. 대원들은 옆 건물 옥상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가는 동시에 폭약과 해머로 방탄유리창을 부수고 최루탄을 던지며 진입했습니다. 작전은 단 17분 만에 끝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인질 1명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지만 나머지 19명은 무사히 구조됐고, 테러범은 6명 중 5명이 사살되고 1명(파우지 네자드)만 생포됐습니다. 이 장면은 BBC 생중계로 전 세계에 그대로 노출됐고, 그날 이후 방독면과 검은 전투복 차림의 SAS 이미지는 서방 대테러부대의 상징이 됐습니다.
SAS vs GSG9, 두 대테러부대 비교
비슷한 시기 각자의 방식으로 대테러 역사에 이름을 남긴 두 부대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SAS(영국) | GSG9(독일) |
| 창설연도 | 1941년(육군 습격부대로 출발) | 1972년 |
| 창설 계기 | 2차대전 북아프리카 사막전 | 뮌헨올림픽 인질 참사 |
| 소속 | 영국 육군(UKSF) | 독일 연방경찰 |
| 대표 작전 | 오퍼레이션 님로드(1980, 이란대사관) | 오퍼레이션 파이어매직(1977, 루프트한자181편) |
| 상징 | 모토 "Who Dares Wins" | 부대명 자체(국경경비대 9중대 약자) |
이렇게 사막을 누비던 습격부대로 출발한 SAS는 오늘날 세계 대테러부대의 원형이 됐습니다. 판 댄스로 대변되는 혹독한 선발, 섬광탄이라는 발명품, 그리고 17분 만에 끝난 프린시스 게이트의 그날은 지금도 각국 특수부대가 참고하는 교본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수부대가 운용하는 장비' 연재는 다음 편에서 또 다른 나라의 부대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