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미 해군 특수전(Naval Special Warfare) 공식 사진 · 위키미디어 커먼즈 퍼블릭 도메인
1980년대 미 육군은 M1911A1 권총을 대체할 신형 제식권총을 뽑는 사상 최대 규모의 트라이얼을 열었습니다. 25종에 가까운 총이 도전했지만 끝까지 시험을 통과한 건 단 두 자루, 이탈리아 베레타 92SB-F와 스위스·독일 합작 회사 시그자우어의 P226이었습니다. 결과는 베레타의 승리,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아는 M9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험에서 떨어진 P226이 훗날 네이비씰과 데브그루의 전용 권총 'MK25'로 부활해 30년 넘게 쓰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트라이얼에서 진 총이 어떻게 가장 까다로운 부대의 표준이 됐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성능은 인정받고도 계약을 놓치다
1984년 시작된 미 육군의 XM9 트라이얼은 그때까지 기존 제식이던 M1911A1을 대신할 9mm 권총을 뽑는 자리였습니다. 다양한 제조사의 총이 몰려들었지만 신뢰성·내구성 기준을 통과해 최종까지 남은 건 베레타 92SB-F와 SIG P226뿐이었습니다. 미 회계감사원(GAO) 보고서에 따르면 P226은 개별 단가 자체는 베레타보다 낮았지만, 예비 부품과 예비 탄창까지 포함한 '전체 패키지 가격'에서 베레타 쪽이 더 낮게 책정되면서 계약이 베레타로 넘어갔습니다. 순수 성능이 아니라 패키지 견적 차이로 승부가 갈린 셈이라, SIG 쪽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결과로 회자됐습니다. 결국 M9이라는 이름으로 미군 전체의 제식권총 자리는 베레타가 차지하게 됐습니다.
육군이 놓친 총을 물속의 특수부대가 알아보다
트라이얼에서 떨어졌다고 P226이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독일 해군의 전투 잠수부대인 캄프슈비머(Kampfschwimmer)가 먼저 이 총을 실전에서 시험해보고 좋은 평가를 내렸고, 이 소문을 들은 미 네이비씰도 1980년대부터 독자적으로 P226을 도입해 쓰기 시작했습니다. 육군의 공식 채택 여부와 상관없이, 정작 물속과 해안에서 매일 총을 다뤄야 하는 특수부대 쪽에서 먼저 실전성을 인정한 셈입니다. 이후 해군은 이 흐름을 공식화해 1989년 P226을 정식으로 채택하면서, 미 해군의 조달 명명법에 따라 'Mk 25 Mod 0'라는 제식명을 붙였습니다. Mk(마크)와 Mod(모드) 번호는 SOCOM 권총인 Mk23이나 특수작전용 소총 Mk12처럼 해군이 특수전 장비에 붙이는 고유 일련번호 체계로, 총이 25번째로 특별하다는 뜻이라기보다는 해군 병기국 등록 순서에 가깝습니다.
바닷물 속에서 살아남게 만든 디테일
MK25가 일반 P226과 다른 점은 겉모습보다 마감에 있습니다. 슬라이드에는 해군 특수전(Naval Special Warfare) 전용임을 나타내는 닻(anchor) 문양이 새겨져 있고, 스테인리스 슬라이드에 니트론 코팅과 인산염 처리를 더해 바닷물에 상시 노출되는 환경에서도 부식이 더 천천히 진행되도록 설계됐습니다. 총열과 약실에도 크롬 도금을 입혀 모래나 습기가 많은 환경에서 발사 신뢰성을 높였고, 이후 개량형에는 조준경이나 조명을 달 수 있는 피카티니 레일도 추가됐습니다. 무게는 실탄 없이 약 34온스(964g)로, 당시 미군 제식 M9의 약 2.5파운드(1134g)보다 가벼운 편이었고, 총열 길이는 4.4인치, 탄창 용량은 15발로 근접전에서 다루기 좋은 크기였습니다.
베레타와 비교하면 보이는 선택의 이유
네이비씰이 육군의 결정과 다른 길을 간 데에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초기 M9은 실사격 시험 중 슬라이드 균열 같은 기계적 결함 사례가 보고되며 신뢰성 논란에 시달렸던 반면, P226은 이런 결함 사례가 거의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무게 역시 M9이 더 무거웠고, DA/SA(더블액션·싱글액션) 방식은 두 총이 같았지만 P226의 그립감과 명중률이 더 우수하다는 평가가 대원들 사이에서 많았습니다. 여기에 앞서 설명한 부식 방지 마감까지 더해지면서, 원래는 트라이얼 탈락작이었던 총이 오히려 가장 험한 환경에서 뛰는 부대의 표준으로 자리 잡는 역설이 벌어진 셈입니다.
30년 만의 교체, 그리고 M9의 마지막 반전
영원할 것 같던 MK25 체제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2015년경부터 네이비씰 부대에 컴팩트 권총 글록19가 함께 지급되기 시작했고, 이후 점진적으로 MK25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전환이 진행됐습니다. 한편 미 육군 쪽에서는 더 극적인 반전이 있었습니다. 2014년 시작된 차세대 권총 사업(MHS)에서 이번에는 시그자우어의 새 모델 P320이 글록 등 경쟁작을 제치고 최종 선정됐고, 2017년부터 M17(풀사이즈)·M18(컴팩트)이라는 이름으로 베레타 M9을 밀어내고 미군 전체의 제식권총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30여 년 전 트라이얼에서 베레타에 패했던 시그자우어가, 이번에는 반대로 베레타를 밀어내고 승자가 된 셈입니다.
베레타 M9 vs SIG P226 MK25, 핵심 비교
지금까지 살펴본 두 총의 차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베레타 M9 | SIG P226 MK25 |
| 1985 XM9 트라이얼 결과 | 채택(전체 패키지 가격 우위) | 탈락(단가는 낮았으나 총액에서 밀림) |
| 실제 운용 | 미군 전반 제식권총 | 네이비씰·데브그루 전용(1989~) |
| 무게 | 약 2.5파운드(1,134g) | 약 34온스(964g) |
| 탄창 용량 | 15발 | 15발 |
| 부식 방지 | 기본 마감 | 니트론 코팅+인산염 처리, 크롬 도금 총열 |
| 이후 세대교체 | SIG P320(M17/M18)에 자리 넘김(2017) | 글록19로 순차 전환(2015~) |
육군 트라이얼에서 떨어진 총이 가장 험한 바다에서 뛰는 부대의 표준이 되고, 그 회사가 30년 뒤 결국 미군 전체 제식권총 자리까지 차지했다는 흐름이 흥미롭습니다. '특수부대가 운용하는 무기' 연재는 앞으로도 소총과 권총, 차량과 기타 장비를 하나씩 짚어가며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