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t 최신 글을 불러오는 중...

활주로가 없어도 뜬다! 전투기의 상식을 바꾼 ‘해리어’의 비밀

9월 25, 2026

활주로가 없어도 뜬다! 전투기의 상식을 바꾼 ‘해리어’의 비밀

전투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강습상륙함 비행갑판에 수직착륙하는 AV-8B 해리어 II 전투기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긴 활주로입니다. 

전투기는 활주로를 빠르게 달리면서 날개에 충분한 양력을 만들어야 비로소 하늘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전투기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영국에서 탄생한 해리어(Harrier)입니다.

활주로를 길게 질주하지 않고도 이륙할 수 있고, 조건이 맞으면 거의 제자리에서 떠올라 수직으로 착륙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해리어에는 자연스럽게 ‘Jump Jet’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습니다.

오늘 볼트맨의 밀리터리 이야기에서는 독특한 외형만큼이나 독특한 비행방식을 가진 해리어 전투기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1. 왜 수직이착륙 전투기가 필요했을까?

냉전시대 군사전략에서 공군기지는 매우 중요한 목표물이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투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더라도 활주로가 공격받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전투기를 출격시키기 어려워집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등장합니다.

“전투기가 긴 활주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면 어떨까?”

짧은 임시 활주로나 야전기지, 함정 등에서도 운용할 수 있다면 항공전력의 생존성과 운용 유연성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발상에서 개발된 실험기 가운데 하나가 영국의 P.1127이었고, 이후 Kestrel을 거쳐 실전형 해리어로 발전하게 됩니다.

초기 양산형인 Harrier GR.1은 1969년 영국 공군에서 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2. 해리어는 어떻게 제자리에서 뜰까?

해리어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장비가 있습니다.

롤스로이스 페가수스(Rolls-Royce Pegasus) 계열 엔진입니다.

일반적인 제트전투기는 엔진에서 발생한 강력한 추력을 주로 기체 뒤쪽으로 내보냅니다.

하지만 해리어는 상당히 독특합니다.

동체 양쪽에 배치된 4개의 회전식 추력 노즐을 이용해 엔진의 추력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노즐을 뒤쪽으로 향하면 일반적인 비행을 하고, 아래쪽으로 돌리면 추력을 아래로 보내 기체를 들어 올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기수와 꼬리, 날개 끝부분의 자세제어 장치가 저속 또는 호버링 상태에서 기체의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줍니다.

말 그대로 엔진의 힘이 나가는 방향을 바꿔 전투기를 들어 올리는 방식인 것입니다.


3. 수직이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짧은 이륙’

USS Iwo Jima 비행갑판에서 이륙을 준비하는 AV-8B 해리어 II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



해리어 하면 수직이륙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항상 완전한 수직이륙만 고집할 이유가 없습니다.

전투기가 수직으로 떠오르려면 엔진이 기체의 무게를 직접 들어 올려야 하기 때문에 많은 추력이 필요합니다. 연료와 무장을 많이 탑재할수록 부담도 커집니다.

따라서 실제 운용에서는 짧은 거리를 달리면서 이륙하는 STO(Short Take-Off) 방식이 유용합니다.

날개가 만들어내는 양력과 엔진 추력을 함께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연료와 무장을 탑재하는 데 유리합니다.

그래서 해리어를 이해할 때는 단순히 ‘수직이착륙 전투기’라고만 생각하기보다 V/STOL, 즉 수직·단거리 이착륙 전투기라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4. 해리어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포클랜드 전쟁

해리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있습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입니다.

영국은 남대서양의 포클랜드 제도를 둘러싸고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전장이 영국 본토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해상 항공전력의 중요성이 컸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 해군의 Sea Harrier가 항공모함에서 운용되며 방공 임무 등을 수행했습니다. 

영국 공군의 Harrier GR.3 역시 지상공격 임무 등에 투입됐습니다.

해리어 계열기가 실제 전쟁에서 대규모로 운용되면서 V/STOL 전투기의 전략적 가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5. 미국도 해리어에 주목했다

해리어의 독특한 능력에 관심을 가진 대표적인 군이 미국 해병대였습니다.

해병대 입장에서는 대형 공군기지에만 의존하지 않고 상륙작전과 원정작전을 지원할 수 있는 전투기가 매력적이었습니다.

미 해병대는 1971년 첫 AV-8A를 도입했고, 이후 성능을 크게 발전시킨 AV-8B Harrier II를 운용했습니다.

AV-8B는 단순히 수직으로 뜨는 신기한 전투기가 아니었습니다.

근접항공지원과 지상공격을 비롯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도록 발전했으며, 후기형에서는 레이더와 정밀유도무기, 표적획득 장비 등도 운용했습니다.


6. AV-8B Harrier II의 주요 제원

  • 승무원: 1명
  • 길이: 약 14.1m
  • 날개폭: 약 9.25m
  • 최대 총중량: 약 32,000lb(약 14.5t)
  • 최대속도: 약 585노트
  • 무장 장착: 7개 외부 장착 지점

운용 시기와 개량형에 따라 AIM-9 사이드와인더, AIM-120, AGM-65 매버릭, JDAM 계열 정밀유도폭탄, 로켓과 25mm 기관포 시스템 등 다양한 무장을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후기 AV-8B Harrier II Plus에는 APG-65 레이더가 적용되면서 임무 수행 능력이 더욱 향상됐습니다.


7. 해리어에는 치명적인 약점도 있었다

수직·단거리 이착륙 능력은 분명 대단했지만 공짜로 얻은 능력은 아니었습니다.

수직 비행에서는 강력한 엔진 추력을 이용해 기체 전체를 직접 들어 올려야 합니다. 

따라서 연료와 무장을 많이 실은 상태에서는 운용상 제약이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호버링 상태에서는 일반적인 전투기 비행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세를 제어해야 합니다.

강력한 배기가스가 아래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착륙 장소와 함정 갑판 운용에서도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습니다.

결국 해리어의 핵심은 모든 전투기보다 뛰어난 성능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일반 전투기가 사용하기 어려운 장소에서도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8. 그리고 등장한 후계자 F-35B

시간이 흐르면서 해리어 역시 노후화됐습니다.

그리고 해리어가 개척했던 STOVL 전투기의 역할은 새로운 세대의 전투기로 넘어가기 시작합니다.

바로 F-35B Lightning II입니다.

F-35B는 해리어처럼 짧은 거리에서 이륙하고 수직으로 착륙할 수 있지만 그 구현 방법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해리어가 페가수스 엔진의 회전식 노즐을 핵심으로 사용했다면 F-35B는 리프트팬과 회전식 후방 노즐 등을 조합한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여기에 스텔스 설계와 첨단 센서, 데이터 융합 능력까지 결합했습니다.

2026년 6월에는 미 해병대의 마지막 AV-8B 운용 비행대인 VMA-223이 해리어 운용 종료를 기념하는 행사를 열었습니다. 

미 해병대에서 1971년 AV-8A 도입으로 시작된 해리어 계열의 긴 역사가 사실상 마지막 단계에 접어든 것입니다.


9. 해리어가 남긴 진짜 유산

오늘날 해리어를 최신 전투기와 단순히 성능표로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해리어가 등장했던 시대를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긴 활주로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전투기의 운용방식을 바꾸고, 육상기지뿐 아니라 비교적 작은 함정과 전방기지에서도 고정익 전투기를 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제 전력으로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개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해리어가 개척했던 길을 오늘날 F-35B가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리어는 단순히 ‘제자리에서 뜨는 신기한 전투기’가 아닙니다.

전투기는 반드시 긴 활주로를 필요로 한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했고, 실제 전장에서 그 개념을 증명한 항공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