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km 상공에서 34시간을 감시한다 — 미국의 하늘 위 감시자 RQ-4 글로벌호크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
안녕하세요. 볼트맨의 밀리터리 소개입니다.
전투기가 적진 깊숙이 들어가려면 항상 위험이 따릅니다.
아무리 뛰어난 조종사와 첨단 전투기라도 적의 방공망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조종사를 태우지 않고 아주 높은 하늘에서 오랫동안 적진을 감시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몇 시간이 아니라 하루를 훌쩍 넘겨 비행하면서 말입니다.
미국이 이러한 목적으로 개발한 대표적인 무인정찰기가 바로 RQ-4 글로벌호크(Global Hawk)입니다.
늘씬한 동체와 유난히 긴 날개를 가진 글로벌호크의 모습은 전투기보다는 대형 글라이더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독특한 모습의 무인기는 전투기를 격추하거나 지상에 폭탄을 떨어뜨리기 위해 만들어진 항공기가 아닙니다.
글로벌호크의 무기는 정보입니다.
글로벌호크는 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갈까?
RQ-4는 고고도 장기체공 무인항공기, 흔히 HALE(High-Altitude Long-Endurance)급으로 분류되는 정찰 플랫폼입니다.
최대 운용고도는 약 60,000피트, 미터로 환산하면 약 18.3km에 이릅니다.
일반적인 민항기가 약 10~12km 부근을 비행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글로벌호크가 얼마나 높은 곳에서 작전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한 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집니다.
넓은 지역을 오랫동안 관찰해야 하는 전략정찰 임무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장점입니다.
글로벌호크는 이러한 높은 고도에서 각종 센서를 이용해 지상을 관찰하고 수집한 정보를 지상으로 전달합니다.
34시간 이상 하늘에 머무는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의 또 다른 특징은 엄청난 체공시간입니다.
미 공군이 공개한 자료에서는 34시간 이상의 체공능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항속거리 역시 약 12,300해리에 달합니다.
쉽게 말해 글로벌호크는 목표지역까지 먼 거리를 날아간 뒤 그곳에서 오랫동안 정찰하고 다시 기지로 돌아오는 임무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미 공군박물관은 글로벌호크의 전형적인 임무 사례로 약 1,200마일을 날아 목표지역에 도착한 뒤 그곳에서 24시간 동안 정찰하고 다시 기지로 돌아오는 형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찰위성이 특정 궤도를 따라 움직인다면 글로벌호크는 필요한 지역으로 직접 이동해 장시간 머무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장점을 갖습니다.
조종사가 없는데 어떻게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갈까?
글로벌호크에는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통제 없이 혼자 날아다니는 것은 아닙니다.
임무계획에 따라 자동비행을 수행하면서 지상통제소의 원격 조종사와 센서 운용요원이 비행과 정찰임무를 관리합니다.
운용체계는 크게 이륙과 착륙을 담당하는 부분과 실제 임무를 관리하는 부분으로 나뉩니다.
장거리 임무 중에는 위성통신 등을 통해 항공기와 지상통제소가 연결됩니다.
이 덕분에 항공기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작전하더라도 지상에서는 센서를 운용하고 필요한 정보를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호크의 눈은 무엇을 볼까?
높이 오래 나는 것만으로 정찰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글로벌호크의 진짜 가치는 기체에 탑재된 센서에서 나옵니다.
운용형식에 따라 전자광학과 적외선 센서, 합성개구레이더(SAR), 이동표적 탐지(MTI), 신호정보 수집장비 등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합성개구레이더는 구름이나 어둠 때문에 일반 카메라로 관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상을 탐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동표적 탐지 기능은 이름 그대로 지상에서 움직이는 표적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활용됩니다.
여기에 신호정보 수집능력까지 결합되면 단순히 사진 한 장을 촬영하는 수준을 넘어 특정 지역에서 어떤 움직임과 전자적 활동이 나타나고 있는지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글로벌호크는 폭탄도 미사일도 없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거대한 크기와 높은 가격 때문에 글로벌호크를 공격용 드론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RQ-4에는 기본적으로 공격용 무장이 없습니다.
이름의 첫 글자인 'R'도 Reconnaissance, 즉 정찰임무를 나타냅니다.
MQ-9 리퍼가 정보수집과 함께 무장을 이용한 공격임무까지 수행할 수 있는 것과 달리 글로벌호크의 핵심임무는 정보·감시·정찰입니다.
적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다른 전력이 제대로 싸울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이 항공기의 역할입니다.
날개폭이 전투기보다 훨씬 큰 이유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Wikimedia Commons)
글로벌호크를 가까이에서 보면 생각보다 엄청나게 큽니다.
동체 길이는 약 14.5m지만 날개폭은 약 39.8m에 달합니다.
전투기와 비교하면 유난히 길고 가느다란 날개입니다.
이런 형태는 빠르게 기동하며 공중전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높은 고도에서 연료를 아끼면서 오랫동안 비행하기 위한 설계입니다.
엔진은 롤스로이스 계열 F137 터보팬 엔진 한 기를 사용합니다.
최고속도를 경쟁하는 항공기가 아니라 얼마나 높이, 얼마나 멀리, 얼마나 오래 머무르느냐가 중요한 기체인 것입니다.
U-2 정찰기는 있는데 왜 글로벌호크가 필요했을까?
미국에는 이미 유명한 고고도 정찰기가 있습니다.
바로 냉전시대부터 활약한 U-2 정찰기입니다.
그런데 U-2에는 사람이 탑승합니다.
고고도에서 장시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조종사에게 상당한 부담을 줍니다.
반면 글로벌호크는 조종사를 기체에 태우지 않기 때문에 장시간 비행에서 인간의 체력적인 한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글로벌호크가 등장하자마자 U-2의 모든 임무를 완전히 대신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센서와 임무 유연성, 운용비용 등 여러 요소가 얽혀 있어 두 체계는 오랜 기간 각자의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이 점은 군용 무기체계에서 신형 장비가 등장한다고 기존 장비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합니다.
정찰위성이 있는데 굳이 글로벌호크가 필요할까?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정찰위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값비싼 글로벌호크를 따로 운용할 이유가 있을까요?
위성과 무인정찰기는 서로 장단점이 다릅니다.
위성은 우주에서 광범위한 지역을 관찰할 수 있지만 정해진 궤도를 따라 움직입니다.
반면 글로벌호크는 필요에 따라 특정 작전지역으로 이동해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감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위성, 유인정찰기, 무인정찰기와 다양한 센서가 서로 정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한국도 글로벌호크를 운용한다
글로벌호크가 우리에게 더욱 흥미로운 이유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공군 역시 RQ-4 글로벌호크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처럼 군사적 긴장이 높고 짧은 시간 안에 상대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하는 환경에서 고고도 장기체공 정찰자산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특히 다른 나라의 정보자산에만 의존하지 않고 필요한 정보를 직접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인 가치가 큽니다.
전투기나 미사일처럼 눈에 보이는 공격력은 아니지만 현대전에서는 누가 상대를 먼저 발견하고 정확한 정보를 확보하느냐가 전투의 결과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곳에 있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60,000피트 가까운 고도를 비행한다고 해서 글로벌호크가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현대의 장거리 지대공미사일은 높은 고도의 항공기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19년에는 미 해군이 운용하던 RQ-4 계열의 MQ-4C 계통과 관련된 고고도 무인기 RQ-4A BAMS-D가 이란에 의해 격추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고고도 무인정찰기라고 해도 강력한 방공망 주변에서 작전할 경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습니다.
조종사의 생명을 직접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다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기체 자체가 값비싼 전략자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글로벌호크의 진짜 무기는 미사일이 아니다
글로벌호크에는 미사일도 없고 폭탄도 없습니다.
화려한 공중전을 펼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거대한 무인기가 필요한 이유는 현대전에서 정보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적의 병력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새로운 시설이 생겼는지, 특정 지역에서 어떤 활동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강력한 전투기와 미사일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상대보다 먼저 보고 먼저 판단할 수 있다면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볼트맨의 한마디
RQ-4 글로벌호크는 겉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항공기입니다.
전투기처럼 빠르지도 않고 폭탄이나 미사일을 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날개폭은 약 40m에 이르고 18km가 넘는 높은 하늘까지 올라가 하루 이상 임무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누구보다 먼저 보고, 더 오래 지켜보기 위해서입니다.
현대전에서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것만큼 그 무기를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내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호크가 수집하는 정보는 때로는 미사일보다 더 중요한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늘 높이 올라가 말없이 전장을 바라보는 거대한 무인기.
RQ-4 글로벌호크는 현대전이 단순한 화력의 싸움에서 정보와 감시, 탐지의 싸움으로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항공기입니다.
자료 참고
United States Air Force - RQ-4 Global Hawk Fact Sheet
National Museum of the United States Air Force - RQ-4 Global Haw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