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미 국방부(DoD) 공식 사진 · Public Domain(DefenseImagery.mil, DF-ST-02-03033)
1976년 6월 27일 밤, 텔아비브를 출발해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139편이 그리스 아테네를 경유한 직후 하이재킹당했습니다. 무장괴한들은 승객 248명을 태운 채 리비아를 거쳐 우간다 엔테베 국제공항으로 기수를 돌렸고, 독재자 이디 아민은 이들을 공항에서 직접 맞이했습니다. 일주일 뒤, 이스라엘은 4,000km 떨어진 아프리카 한복판까지 수송기 4대를 몰고 가 인질 106명 가운데 102명을 단 90분 만에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 같은 구출작전의 성패를 가른 건 총이 아니라, 독재자의 차와 똑같이 꾸민 검은 벤츠 한 대였습니다. '특수부대가 운용하는 장비' 연재는 오늘 이스라엘로 갑니다.
사이렛 매트칼, 총참모부 직속의 그림자 부대
사이렛 매트칼은 1957년 창설된 이스라엘군 총참모부 정찰대로, 정식 명칭은 '유닛 269'입니다. 육군 예하 부대가 아니라 총참모부 직속으로 편성된 것부터 이례적인데, 그만큼 국가 최고위급 판단이 필요한 극비 작전에 투입된다는 뜻입니다. 적진 깊숙한 곳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장거리 정찰이 본래 임무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인질 구출과 요인 확보, 대테러 작전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부대원 선발 과정인 '기부쉬'는 며칠간 잠을 재우지 않은 채 극한의 체력 시험을 반복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데, 지원자 대부분이 중도 포기합니다. 이곳을 거친 인물 중에는 훗날 총리에 오른 에후드 바라크와, 네타냐후 삼형제(요나탄·베냐민·이도)도 있습니다. 부대의 존재 자체가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을 만큼, 사이렛 매트칼은 이스라엘 특수전의 가장 은밀한 얼굴로 통합니다.
아테네에서 낚아챈 여객기, 승객 248명
1976년 6월 27일,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출발해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139편이 아테네를 경유한 직후 공중납치당했습니다. 범인은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 소속 2명과 독일 극좌 조직 '혁명 세포' 소속 빌프리트 뵈제, 브리기테 쿨만 2명, 총 4명이었습니다. 이들은 승객과 승무원 248명을 태운 채 리비아 벵가지에서 급유한 뒤 우간다 엔테베 국제공항에 여객기를 착륙시켰습니다. 놀랍게도 우간다 독재자 이디 아민은 납치범들을 공항에서 직접 맞이하며 사실상 이들의 편에 섰고, 인질들은 옛 공항 청사에 갇힌 채 협상 카드로 전락했습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정부는 벼랑 끝 시간표를 안고 움직여야 했습니다.
유대인만 남기고, 148명을 풀어준 이유
납치범들은 인질을 선별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이거나 이스라엘 국적자가 아닌 승객 148명은 6월 30일과 7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풀어줬지만, 유대계·이스라엘 국적 승객과 자원해서 남은 에어프랑스 승무원 12명 등 106명은 계속 억류했습니다. 여권과 이름으로 사람을 갈라 세우는 이 장면은 홀로코스트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사회를 더 격앙시켰습니다. 납치범들은 이스라엘과 서독, 케냐, 프랑스, 스위스에 수감된 동료 53명의 석방을 요구하며 7월 4일 오전까지 시한을 못 박았습니다. 협상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된다고 판단한 이스라엘 내각은 결국 군사작전 쪽으로 무게를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4,000km, 수송기 4대에 실린 도박
작전 입안은 준장 단 숌론이 맡았습니다. 엔테베까지는 편도 4,000km, 이스라엘 전투기의 항속거리를 훌쩍 넘는 거리였습니다. 이스라엘군은 C-130 허큘리스 수송기 4대에 병력과 차량을 나눠 싣고, 케냐 나이로비 조모 케냐타 공항에서 몰래 급유하는 조건으로 케냐 정부의 묵인을 얻어냈습니다. 비행에만 7시간 40분이 걸렸고, 레이더에 잡히지 않도록 대부분 구간을 초저고도로 날았습니다. 작전 개시일로는 달빛이 옅은 밤을 골랐고, 엔테베에 접근한 첫 수송기는 그 시각 정기적으로 뜨고 내리던 여객기인 척 관제탑에 접근을 알렸습니다. 실제 투입 병력은 100명 안팎, 이 중 습격조로 옛 터미널에 곧장 진입할 인원은 30여 명이었습니다.
위장의 핵심 장비, 이디 아민의 검정 벤츠
작전의 승패를 가를 장비는 소총이 아니라 자동차였습니다. 엔테베 활주로에서 옛 터미널까지는 몸을 숨길 곳 하나 없는 개활지였고, 그 사이에는 우간다군 검문소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정면으로 걸어 들어가면 첫 발도 쏘기 전에 발각될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군은 이디 아민이 타고 다니던 것과 똑같은 검정 벤츠 승용차 한 대를 구해 앞세우고, 그 뒤로 늘 아민을 수행하던 랜드로버 호위 차량까지 나란히 배치했습니다. 습격조는 우간다군 위장복을 걸치고 소음 권총을 챙겨 이 차량 행렬에 올라탔습니다. 지휘관 요나탄 네타냐후 중령이 탄 벤츠가 앞장서 활주로를 가로질러 터미널로 향했고, 검문소 경비병은 처음엔 이 차량 행렬을 진짜 대통령 행차로 착각해 경례를 붙였습니다.
새로 산 흰색 벤츠가 부른 오차
그런데 계획에 없던 변수가 튀어나왔습니다. 검문소를 지키던 우간다군 병사 두 명이 최근 아민이 흰색 벤츠로 차를 바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낯선 검정 벤츠를 수상하게 여긴 경비병들이 소총을 겨누며 정지를 요구했습니다. 요나탄 네타냐후는 소음 권총으로 조용히 제압하려 했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쏜 총알은 빗나갔고, 결국 총성이 활주로 전체에 울려 퍼지면서 조용한 기습은 정면 교전으로 바뀌었습니다. 은밀하게 접근한다는 원래 계획은 그 순간 깨졌지만, 이미 차량은 터미널 코앞까지 다다른 뒤였습니다. 대원들은 차에서 뛰어내려 곧장 인질이 갇힌 건물로 달려갔습니다.
옛 터미널 돌입, 30분의 총격전
습격조는 옛 터미널 홀에 남아 있던 승객들에게 히브리어와 영어로 '엎드리라'고 외치며 진입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총성에 몸을 일으키거나 우왕좌왕하던 인질 세 명이 교전 중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대원들은 남은 납치범들까지 모두 제압했습니다. 터미널 건물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분이 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뒤이어 착륙한 후속 수송기에서는 장갑차와 병력이 쏟아져 나와 우간다 공군기 11대를 활주로에서 파괴해 추격기 발진을 원천봉쇄했습니다. 우간다군 45명이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실제 교전은 30분, 착륙부터 인질을 태우고 다시 이륙하기까지 지상에서 보낸 시간은 53분이었으며, 케냐에서 급유까지 마치고 이스라엘 영공에 들어서기까지는 90분 남짓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인질 3명이 안타깝게 희생됐지만 나머지 102명은 무사히 구조됐습니다.
요나탄 네타냐후의 전사, 그리고 남은 이야기
작전 중 목숨을 잃은 이스라엘군은 단 한 명, 지휘관 요나탄 네타냐후 중령이었습니다. 관제탑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아 쓰러졌고, 대원 5명이 함께 부상을 입었습니다. 작전명은 애초 '오퍼레이션 썬더볼트'였지만, 그의 전사 이후 이스라엘에서는 '오퍼레이션 요나탄'으로도 불립니다. 애초 억류됐던 106명 가운데 74세 인질 도라 블로흐는 작전 며칠 전 음식을 먹다 목이 막혀 캄팔라 시내 병원으로 옮겨진 터라 현장에 없었는데, 안타깝게도 작전 다음 날 우간다 당국에 의해 병실에서 살해됐습니다. 엔테베 작전은 지금도 세계 각국 특수부대가 인질 구출 교리를 세울 때 가장 먼저 참고하는 사례로 꼽힙니다.
세계 인질구출작전, 소요 시간 비교
비슷한 시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질을 구해낸 작전들을 표로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구분 | 오퍼레이션 썬더볼트(이스라엘) | 오퍼레이션 님로드(영국) | 아덴만 여명작전(한국) |
| 연도 | 1976년 | 1980년 | 2011년 |
| 담당 부대 | 사이렛 매트칼 | SAS | 해군 UDT/SEAL·707특임대 |
| 장소 | 우간다 엔테베 공항 | 런던 이란대사관 | 소말리아 인근 아라비아해 |
| 억류 인질 수 | 106명 | 20명 | 21명 |
| 구조 인원 | 102명 | 19명 | 21명(전원) |
| 작전 소요 시간 | 90분 | 17분 | 4시간 58분 |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총이 아니라 자동차 한 대와 군복 한 벌로 위기를 돌파했던 그날 밤은, '장비'라는 것이 반드시 무기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늘까지도 보여줍니다. '특수부대가 운용하는 장비' 연재는 다음 편에서 또 다른 나라의 부대로 이어가겠습니다.